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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 사이에 매스컴에 자꾸 나오길래 검증해봤습니다.
제가 영어 원서 파일을 갖고 있는 상위권 의대 수준 신경해부학 교과서와 상위권 간호학과 수준 해부생리학 교과서 본문 몇 백 단어씩을 구글 번역기로 처리해봤습니다.
결과 보니까 놀랍게도 제가 그간 경험한 소위 전문가들 초고(최종 원고 아니고)로 치면 하위 1/3 정도보다는 우수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구글 능력이 점점 더 향상될 거고..
따라서 이젠 구글이 번역한 초고를 성실한 전문가가 감수 및 교정하면 교과서로 쓸 수 있을 정도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단 성실한 전문가..
저는 그간 전공서적은 감수하기 싫어서 감수료를 무지 비싸게 불렀는데(출판사가 부탁하면 저는 페이지당 10만원을 불렀기 때문에 한 권도 감수한 적이 없음), 구글 번역한 원고는 어느 정도 수준이 보장되니까 1만원 아래로 낮춰야 할 것 같습니다^^ <-- 아는 분 교양 서적은 페이지당 1000원만 받고 해준 적도 있습니다만..
즉 학생과 출판사로선 매우 좋은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번역서 출간하는 데 번역료가 안 드니깐 제작비가 내려가고.. 책값도 싸지고..
물론 전업번역가, 특히 소위 초벌 번역가는 큰 타격을 입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는 출판사 나름 또 얼마 되지도 않은 판매량을 위해 공들여서 번역하기엔 수지가 안 맞고...
앞으로는 전문 인력에게 번역을 외주로 맡기기 보단, 출판사 소속 번역가의 번역 ± 구글 번역으로 가지 않을까 싶네요.
밑에 번역가 채용 글이 있길래 저도 공부도 할 겸 부업(?)으로 논문 번역이나 해 볼까 생각하다가도
학습 효율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아서 선뜻 손이 안가더군요.
지금은 일한 번역과 영한 번역 번역료가 가장 짤 겁니다.
기초의학 교과서 번역료도 짭니다. 작년에 제의 받은 영어 조직학 교과서 번역료가 장당 1만원이었습니다. 근데 교과서 1페이지는 그림이 있다고 해도 MS 워드 A4로 2페이지가 넘거든요. 말도 안 되는 돈이죠(단 역자가 이 책을 교과서로 채택하면 추가로 돈을 주는 경우도 있답니다. 김영란법 위반?). 그래서 학생이나 조교가 대리 번역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구글 번역보다 못한 초고를 본 적도 있습니다.
이 조직학 책은 다행히도 출판사와 한 분 횡포 때문에 나가리 되었습니다.
지금 맡은 Ross 조직학 번역은 인세가 후하고 가장 유명한 교과서니까 나름 신경써서 작업했습니다만...
사람이 교과서 번역했을 때 문제 되는 게 비문, 오역, 번역 생략입니다. 게다가 번역료가 편의점 시급보다 짜기 때문에 교수에게 번역 의뢰해도 학생이나 조교가 번역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학생이 교과서 읽을 때 비문은 쉽게 확인이 됩니다. 나는 밥이 먹었습니다..라는 비문이 있다면 금세 발견하죠.
근데 오역과 생략은 학생이 발견할 수 없습니다. 또다른 전문가가 일일이 원서와 대조해야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역과 생략이 많은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은 잘못된 지식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런 학생은 당장 학교 수업에 지장을 받을 겁니다. 게다가 나중에 의사가 되어 나와 내 가족을 치료한다면..?
근데 구글 번역으로 초고를 만들면 적어도 고의로 생략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비문이나 오역은 감수자가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제가 참여하는 조직학 수업은 교과서가 비교적 얇은 원서입니다만, 학생들은 95%가 번역서를 구입합니다. 근데 이 번역서도 몇몇 챕터는 구글 번역보다 못한 수준입니다.
제가 참여한 Ross 6판 번역서로 책을 바꾸고 싶은데, Ross는 너무 두꺼워서 교재로 추천을 못 하고 있습니다.
지금 번역 중인 Ross 조직학은 7판입니다. 저는 두 챕터(신경, 조직 일반)만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Ross 6판은 4판과 5판 번역서와 전혀 다른 책입니다. 역자와 번역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쇼.
그리고 지금 번역서가 일부는 자동 번역만도 못한 수준이라면 당분간은 사지 말아야겠네요. 감수가 제대로 안 돼서 오역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네요.
구글 신경망 번역은 단어>>단어 번역이 아닙니다. 따라서 단어 누락이 가능합니다.
예전에 무어 핵심임상해부학 번역할 때 한 챕터가 원서와 달라서 조사해보니 다른 한글 해부학 책을 그대로 베낀 원고였음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근데 웃기는 건 그 한글해부학책은 무어 임상해부학(핵심 말고)을 베낀 책이었다는..
아무튼 구글은 최소한 사기는 치지 않을 겁니다.
4판 역서가 나오고 몇 년 뒤에 5판 역서가 나왔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4판 역자 중 절반이 5판에서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담당하던 챕터와 대표역자가 담당한 챕터를 새로 번역하지 않고 4판 그대로 출간해버린 겁니다. 그러다보니 절반은 5판이고 절반은 4판인 이상한 책이 5판 표지를 입고 출간되었습니다. 원래 4판 역서도 품질이 안 좋았는데, 사기까지..
초등학교 때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해 학교에서 이상한 전과를 강매한 적이 있습니다. 알고 보니 몇 년 전 출간된 구판 전과 재고를 표지만 갈고 강매했던 겁니다. 그러다보니 전과와 교과서 내용이 다른 겁니다.
당시 그 국민학교 전교생이 7000명이 넘었었습니다(한 때 8000명이 넘었었고, 저학년은 3부제 수업을 했었음. 당시 서울시내 몇 개 학교가 이런 형편이었음).그런데 폐지를 정가대로 판 겁니다. 명백한 사기죠. 강매한 학교는 공범이고.. 그 뒤로 저는 교장이나 선생을 쓰레기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짜 문제는 구글의 데이터베이스가 잘못된 번역도 수집한다는 점입니다. 아마 선생님께서 보셨던 잘못된 번역들은 이미 출판도 되었으니 고스란히 DB가 될 겁니다. 또 잘못된 지식(번역자의 편견/또는 새로운 지식의 발견으로 인해 거짓이 된 지식들)도 바로잡으려면 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저도 전문 문헌 번역에 살짝 발 담그고 있어서 신경망 번역에 관심과 기대가 큽니다만, 주변에서 뉴스 정도 보는 분들은 구글 번역을 크게 환영하고 있는데 직업적으로 번역하는 분들 기대에는 아직 못미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