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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으로써 이런 말씀 드리기 외람됩니다만,
종종 의사 출신 기초의학 교원이 멸종될 것이라는 기사들을 보는데, 이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연계가 잘 안 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인가요? 그렇다고 보기엔 지금 기초의학 교수님들 중 의사 출신이신 분들도 임상 현장을 떠난 지 오래이신 것 같은데요. 연계가 중요하다면 기초의학 과목들의 시수 일부를 임상의학 교수가 가르치게 하면 되지 않나요?(저희 학교에서 실제로 하고 있는 방안이기도 합니다..)
기초의학 과목들을 들으면서, 이렇게 이상하게 배우는 사람들도 고역이겠지만 가르치는 사람은 얼마나 고역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슨무슨 과목을 몇 주 만에 배웠느니 어쩌느니, 의대생들끼리 무용담처럼 하는 이야기지만 그 시간 내에 '제대로' 공부하고 배울 수 없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 아닙니까.
학생의 치기 어린 투정입니다...
1. 대학원 의학과는 그 특성상 교수 수에 비해 대학원생의 수가 적습니다. 게다가 같은 조건이면 대학원생은 당연히 면허가 있는 MD교수를 선호할 것이며, 이는 Non MD교수가 많이 있는 의과대학이라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2. Non MD교수면 필연적으로 임상연구, 혹은 임상시험이 불가할 것입니다. 이는 역시 경쟁력 약화의 원인입니다.
3. 일부 학생들의 경우 Non MD교수를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다소 무시하는 경우가 있어, 학교 전체적인 학습 효과가 낮아집니다.
우선 저는 non-MD 비전임 교원입니다.
글쎄요...
1. 면허 유무로 판단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처음 접합니다. 대학원 의학과의 대학원생 수는 해당학교의 name value, 세부 전공의 비전, 해당 교실 교수님의 업적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데 모두가 동의하실 겁니다. 아무래도 주요 대학은 대학원생이 많고, 지방대는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대학원생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연구실적/환경(인건비 포함)/학교의 name value 등이 아니겠습니까. 저도 젊은 시절 대학원을 선택할 때 전공과 환경을 보고 선택했지, 교수님의 면허 유무를 보진 않았습니다. 제가 뭐라고 그걸 따집니까.. 심지어 MD 유무는 알지도 못했습니다.
MD, non MD 라는 특성은 이미 어느 정도 경력을 갖고 계신 교수님들께 중요하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교실/랩을 운영해가는 입장에서는요. (일례로 저희 교실에서 학생 수가 가장 많은 분은 면허가 없으십니다. 과연 특이 케이스일까요? 옆 동네 치과대학 non DDS 교수님의 경우 학생이 더욱 많습니다.)
2. 임상연구, 혹은 임상시험이 필요하면 보통 임상과와 협업을 진행합니다. 경쟁력 악화가 될 수도 있지만, 기초교실과 임상교실의 협업이 활성화되는 추세입니다. 연구 실적을 나누어야 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겠습니다.
3. 일부 학부생들의 경우 Non MD교수를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다소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일부 교수님들을 이야기하는 학생들에게서도 느끼고 있고, 과거 저 또한 학생들이 저를 무시한다는 사실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학생이던 석사 2년차 까지요. 이후에는 적어도 제 학생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학생이 괜히 교수를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교수의 수업이나 태도 등에 불만이 있을 때 무시를 하겠지요. 제가 보는 대부분의 문제의 경우는 교수가 고유의 본분을 망각할 때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학이 본분을 망각한 채 교육을 소홀히하고 연구 성과에 목숨을 거는 것이 현실입니다. 힘들게 교수가 되어도 연구 실적 압박에 교육 준비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또 애초에 교수 채용의 기준과 역량을 오로지 연구에 맞추어 놓은 상황이니 비단 교수의 잘못만이라고 하기도 힘들겠네요...
그리고 반대로, 교수라고 하여도 학생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학생을 탓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학생이 교수를 무시하는 것은 학생의 문제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올려주신 '본과생'님께 예가 아닌 듯 해서요.
의사출신 기초의학자가 없다는 사실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듯 합니다.
1. 의사를 육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의사로서 배울 지식을 모두 아는 것이 좋습니다.
본과생님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겨우 몇 주만에 자신의 전공 지식을 모두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죠. 그러다보니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하는데,
(1) 엄청 많은 강의 내용을 짧은 시간에 대충 설명하고는 모두 외우라 한다. 혹은
(2) 몇몇 중요 포인트만 강의를 짧게 하는데, 연계가 되지 않아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수업을 한다.
사실 저는 이 문제가 교육자의 마음가짐이 문제라 생각하지만, 결국 임상의학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초의학이 임상의학이 토대이기도 하지만, 기초의학이 결국 임상의학으로 온전히 이어지기 위해서는 임상의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짧은 시간동안 효율적인, 좋은 수업을 위해서는 자기전공(기초의학과목)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밑받침 된 상태에서, 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과대학생, 장차 임상의학자로서)들이 꼭 알아야 하는 내용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 이후 자기 전공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과, 그 내용이 왜 중요한지를 학생들로 하여금 납득 시켜야 합니다 -그 이유가 임상적 이유라면 더더욱 좋겠지요-.
하여 의사로서 배워야 하는 모든 지식을 섭득한 의사출신 기초의학자 교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헌데 두 가지 궁금증이 드는게... 과연 모든 의사출신 기초의학자가 학생 시절 공부를 잘 했을까요? 물론 국시를 통과했으니 non MD 보다 훨씬 잘 알고 있을겁니다. 둘째, 교수가 된 이후 임상과목 교과서를 펼쳐 본 교수님이 몇이나 될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다른 강의도 하다보니 수업 준비 때마다 해리슨을 펼쳐보고는 매번 새로운 놀라움에 새로운 내용을 강의노트에 추가하는데, 옆방 교수님은...
이 문제를 논하기에는... '연구'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네요.
제 수준에서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의사출신 기초의학자의 가창 큰 장점은, 환자를 직접 접해본 '경험'과 대부분의 의학 지식을 배운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몇 임상 교수님들이 회의시간에 간혹 전혀 다른 전공의 내용도 옛날에 배웠다며 술술 이야기하기도 하시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그런 경험과 지식 수준이 연구에 직결될 된다면 큰 효과를 나타내겠죠.
또 하나... 의사출신 기초의학자와 함께 등장하는 마법의 단어는 '노벨생리의학상'입니다.
대한민국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기 위해서는 의사과학자가 필요하다는 건데요.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의 절반이 의사과학자니까요.
그런데 사실 현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의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25명입니다. 그 중 5명이 생리의학상이고요. 그 중 2명이 의사과학자입니다.
생리/화학/물리 중 단 하나의 노벨상 수상자도 없는 한국의 연구 지원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겁니다.
의과대학 교육과정은 일반적인 의사에게 요구되는 지식과 술기의 수준을 고려하여 다른 전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을 짧은 기간에 전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기본적인 학습능력이 우수한 학생에게 정교한 교육과정 및 방법을 적용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며, 대부분의 의사는 졸업 및 자격증 취득 후에도 자발적으로 혹독한 평생학습을 실천합니다(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수학과정을 직접 경험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후배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부 과정의 노하우일 수도 있고, 기초의학이 임상의학으로 연계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는 통찰력일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후자는 현재 학생 입장에서는 별로 와닿지 않는 부분일 겁니다. 저도 기초의학을 배우던 시기에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하지만, 임상의학 부분을 배우던 시기, 실제로 병원실습을 다니던 시기, 심지어 인턴과 전공의를 하던 시기까지도 예전에 배웠던 내용에서 새로운 연결성을 깨닫는 경험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의학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시각과 관심이 유지된다면 언젠가 어떠한 형태로는 느끼게 되실 겁니다.
참고로 저는 전문의 자격증이 있는 MD로서 현재 기초의학 전임교원으로 임용되어 근무 중입니다. 위에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제가 임용 후 느낀 점도 나눠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