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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어가기♧ Ignaz Semmelweis

The Root of Ambulatory Care (외래 진료 지침서) 전체 목록 보기
KEYWORDS: Ignaz Semmelweis 의과대학 졸업논문으로 <식물의 삶에 대하여>라는 다소 엉뚱한 글을 쓴 제멜바이스는 산부인 과 과목을 제일 좋아했다. 그리고 그가 있던 오스트리아 빈의 시립병원 산부인과병동은 18세기 당시 최고의 시설을 자랑했으며, 시설만 보면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이후 1840년에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큰 산부인과 병동을 갖추게 되며, 이는 두개의 독립적인 병동, 즉 의과대학 남자학생들이 진찰과 치료를 맡았던 1병동과 산부인과 여자조산원들이 진찰과 치료를 맡았던 2병동으로 나누어 관리되었다. 하지만 휼륭한 시설에 반해 1병동의 산모사망률이 2병동 에 비해 세배나 높았으며, 결국 이 사실은 산모들 사이에도 소문이 나 모두들 1병동에 배정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매일 병실 복도에 울려퍼지는 장례 미사 종소리에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했던 제멜바이스는 병 동에 따라 차이가 있는 산모사망률의 원인을 알기 위해 가능한 원인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제멜바이스는 산욕열의 전염경로를 추적할 수 있었다. 바로 1병동의 내과의사와 의학도들은 산욕열로 인한 사망 사체를 검시하지만 2병동 조산원은 그런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엔 의사와 학생들이 사체 검시를 하다가 손을 제대로 씻지도 않고 곧바로 환자들을 진료하는게 당연시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손을 깨 끗하게 씻자는 제멜바이스의 지시가 제대로 지켜진 1848년 1병동의 산욕열 발병률은 1.27%로 1846년의 11.4%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였다. 하지만 이런 놀라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수십년 동안 대부분의 의사들은 제멜바이스의 진심어 린 충고를 거부했다. 19세기 초의 의사들은 사체의 물질이 자기 손에 묻어 있는 것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 려 명예로운 훈장쯤으로 여겼으며, 보다 근본적으론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했던 당시 의사들 자신 이 병을 옮기고 다닌다는 사실에 수긍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스스로 지쳐 쓸쓸히 노후를 보내던 제멜바이스는 19세기 당시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직업 병과도 같았던 매독으로 서서히 죽어갔다. 그리고 제멜바이스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부인할 수 없는 증거’는 1879년 루이 파스퇴르가 발 견했다. from Mavericks, miracles, and medicine -Julie M. Fenster